오귀원- 상처에서 떠오르는 별들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전시장 벽과 바닥에는 버려진, 실용성을 소진하고 이제 무용성으로 사람이 손길에서 벗어나버린 종이와 나무들이 흩어져있다. 그러나 그것은 적조하지만 품위 있게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그 사물, 물질의 주변을 배회하다보면 누군가에 의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오랜 시간 사용되어 서서히 소멸되어 가는 대상의 피부, 상처를 만나게 된다. 나무판이나 종이의 피부는 시간의 입김이나 세월의 잔해를 고스란히 제 몸으로, 살로 증거한다. 피부는 지나간 모든 생애를 기억한다. 그것이 그 사물이 이력이고 역사, 삶이고 얼굴이다. 일상에서, 현실 속에서 치열한 생애를 보낸 것들이 작가의 손에 의해 다시 환생했다. 작가는 그 상처를 보듬고 그 위로 별을 만들어 보인다. 글쎄 그 별의 이미지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작가가 약간의 손질, 흔적을 가해 별의 모양을 연상하게 한 자국이다. 별은 일종의 이상향, 혹은 유토피아나 꿈과 희망 같은 것이다.
 
                           혹 그것이 예술은 아닐까? 버려지고 쓸모없는 사물에서 별을 만나고 있다.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려진 크레파스를 모아 섞어서 칠하는가하면 흠집이 나 버려진 나무토막에 금빛 별을 붙이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투박한 사물에 별자리가 새겨진 것이다. 몇 개가 잇대어 붙여진 낡은 나무판자들이 못과 철사로 엮여져 캔버스로 완성되었다. 작가는 쓸모가 없어져 그렇게 버려진 것들에 깊은 연민을 보내고 있다. 그것들을 모아 붙이고 연결하고 다시 그 위에 칠하고 이미지를 파고 그려 넣었다. 그래서 낡은 나무조각, 쿠키 포장지와 같이 일상적이고 보잘 것 없는 사물들은 저마다 반짝이는 별로 환생했다. 문득 보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별을 하나씩 간직하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만난다. 작가는 버려진 사물의 피부를 어루만지면서 그것들에 별을 몇 개씩 매달아주었다. 그것은 남루하고 힘겨운 삶의 보상같기도 하고 심난한 일상 속에서 예술이 주는 위안처럼 빛난다. 여기서 삶과 예술은 서로 마주하고 있다.

                        

                           오랫동안, 일관되게 오귀원의 작업은 미술의 본질과 작가의 작업하는 행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왔다. 작가는 이른바 노동과 생활, 예술과 비예술, 창조와 모사 사이의 경계선을 건드리면서 예술이란 범주가 과연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다. 그것은 다소 모호하고 난해해보이는 개념미술의 성격을 띠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수공적인 노동이 가해지고 있다. 아울러 전통적인 조각개념과도 거리가 멀다. 따라서 오귀원의 작업은 기존의 한국 현대조각의 일반적 관례에서 벗어나있다.

                          그의 작업을 보면서 김종영과 김창세의 작업 같은 것을 떠올려본다. 인위와 무위 사이에서, 일상의 사물과 예술작품의 사이에서 혹은 조각과 비조각의 경계 그 사이에서 작품들은 진동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오귀원의 작업은 ‘예술가의 독창성’이라는 것이 결국 어떤 범주 안에서 구조적으로 형성되는 하나의 성향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 오귀원은 항상 기존에 존재하는 사물/오브제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일상에서 쓰였던 물건이며 따라서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약간씩 변형되거나 일정한 흔적을 껴안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발견하고 그 위에 약간의 손길을 얹혀놓았을 뿐이다. 그것은 예술작품이면서도 일상의 사물이기도 하다. 그 차이나 간극은 거의 없어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개성,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서 사물로 육박한다. 사물에 수를 놓듯이, 이름을 새겨주듯이, 상처를 어루만져주듯이 보듬는다. 그러는 사이에 기이한 이미지가, 놀라운 자취가 내려앉아 자리한다. 작가는 항상 자기 주변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그것을 선택하고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몸짓, 노동을 올려놓았다. 여기서 버려진 것, 버린 것과 선택하는 것은 등가의 관계를 갖는다. 보편적이고 무의미했던 것이 그녀와의 만남으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는 과정이 다름아닌 예술, 작업인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것은 동시에 삶이기도 하다. 여기서 삶과 예술은 분리되지 않는다. 버려진 물건들을 재료로 한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그러한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오귀원은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서 결국 “삶이라는 것,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아갔던 어떤 사이클들의 반복적인 과정”임을 거듭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그녀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본인의 노동을 통해서 하나의 물건으로 완성되는 것만큼의 의미만을 지닌다. 동시에 버려진 나무와 책상, 종이와 그 안에 이미 있었던 흔적들과 작가가 만들고 개입하고 그려놓은 것을 통해서 그녀는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 하찮은 차이가 바로 한 작가의 겸손한 ‘개성’이며 그것이 또한 한 개인의 존재의 의미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