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원전 보도자료


1. 전시 소개


안녕하십니까? 금산갤러리에서는 오귀원 선생님의 11번째 개인전을 기획했습니다. 오귀원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조소과와 동대학원(석사)을 거쳐 Pratt Institute 대학원을 졸업하고(석사), New York University 대학원에서 미술학(박사)을 전공했습니다. 오귀원 선생님은 예술가의 위치가 과연 어디에 있으며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지성적인 성찰을 매우 위트있는 방법으로 보여줍니다. 본 전시에서 보여지는 이야기는 예술을 일상의 노동으로 살고 있는 작가가 스스로 성찰하고 관조하는 테마이기에 논리적이고 개념적인 유희가 아닌 살아있는 리얼리티로서 공감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시작가 : 오귀원

전시일정 : 2002년 12월 6일 (금) - 12월 15일 (일), 전시기간 중 무휴

전시장소 : 금산갤러리 /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66

Tel. 02-735-6317/8 Fax. 735-6318 www.keumsan.org

관람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

오프닝 리셉션 일시 : 2002년 12월 6일 (금) 오후 5시


2. 전시 개요


이번 전시에서 오귀원은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크게 세가지 작업 방식을 통해서 규정한다.


보고 만들기


오래 전에 들던 구찌백 보고 만들기, 딸아이의 레고(lego) 보고 만들기, 선물받은 지방시 브로치 보고 만들기, 공예품 매뉴얼 보고 만들기, 예전에 제작한 작품의 사진을 보고 사진 크기대로 다시 만들기, 딸아이의 그림 보고 만들기.


우리는 아무리 독창적인 작품을 한다고 해도 결국 커다란 범주 속에서 보면 비슷한 경향들이 역사 속에서 되풀이되는 것을 목격한다. 오귀원은 보고 만들기 작업을 통해서 예술가의 독창성이라는 것도 결국 어떤 범주 안에서 구조적으로 형성되는 하나의 성향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그녀는 개념적인 아이디어만으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신의 손을 거친 오랜 노동을 통하여 작업을 완성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보고 만들기'라는 것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들일만한 의미있는 예술행위이며 예술가로서의 그녀의 개성을 실현할 수 있는 최소의 범주인 것이다.


물감 섞기


전문가용 물감과 학생용 물감의 모든 색을 각각 캔버스 위에 전부 섞어서 전문가용과 학생용의 사이의 색감 차이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언 듯 무의미하고 무개성하게보이는 색깔 칠하기의 단순 작업을 통해 작가는 관람자로 하여금 사회적인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전문가와 아마튜어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전문가와 아마튜어의 범주를 구분하는 구조적 시스템을 가시화하기 위해서 작가는 자신의 개성을 최소화하는 단순 색깔 칠하기 노동자를 자처한다.


버려진 물건들로 작업하기


오귀원에게 버리는 것과 선택하는 것은 등가하다. 선택되지 않은 것 역시 어떠한 이유에서 제외하기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려진 크레파스를 모아서 모두 섞어 칠하는가하면 공사장에 버려진 나무토막 위에 금박의 별을 붙인다. 버려지게 된 이유였던 크레파스의 인기없는 색깔, 나무토막의 흠집은 오귀원과 만남으로써 작품으로 태어나기 위한 필연적 조건이며 이유가 된다. 오귀원은 보편적이고 무의미했던 것이 그녀와의 만남으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는 과정이 곧 삶이라고 생각하며, 버려진 물건들을 재료로 한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그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3. 오귀원의 작품 세계


오귀원은 작업실에서의 노동과 생활, 예술과 비예술, 창조와 모사 사이의 경계선을 건드리면서 예술이란 범주가 과연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그녀는 오래 전에 사용했던 구찌백을 보고 따라 만든 후 구찌 마크 대신 '귀원'의 'G'자를 새기는가 하면, 공예품의 만들기 매뉴얼을 보고 그 지시를 따라서 만들고, 예전에 만든 자신의 작품 사진을 보고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작품들은 만들어진 결과물과 출처가 함께 전시되어 관람자들로 하여금 그 프로세스를 짐작하게 한다. 보고 만드는 과정은 ‘독창적’이어야만 하는 작가들에게는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오귀원은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서 결국 삶이라는 것,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아갔던 어떤 사이클들의 반복적인 과정임을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구찌의 G자가 귀원의 G자로 바뀌는 것이며, 매뉴얼에 나와있는 글이 그녀의 노동을 통해서 하나의 물건으로 완성되는 것 만큼의 의미를 가진다. 전문가용 물감과 학생용 물감을 각각 다른 캔버스 위에 모두 짜서 섞어 칠한 작품을 통해서 그녀는 전문가와 아마튜어 사이의 ‘차이’를 보여준다. 예술과 비예술, 전문가와 아마튜어의 차이는 결국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색감 만큼의 차이 이상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그러나 오귀원은 그 반복적인 ‘출처’와 작가의 노동을 통해 완성된 ‘결과’ 사이의 대수롭지 않은 ‘차이’에 대해서 결코 냉소하거나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차이’, 똑같은 매뉴얼을 보고 만들어도 각자가 조금씩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만큼의 그 하찮은 ‘차이’야말로 예술이며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위치임을 긍정하고 있다. 거대한 사이클 안에서 개인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이야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구조 속에서 개인이 형성하는 눈에 띄지도 않는 그 하찮은 차이가 바로 ‘개성’이며 우리 존재의 의미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버려진 나무의 흠집 위에 금박의 별을 붙인 그녀의 작업이 뭔지 모를 희망으로 와닿는 것도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글 : 이은주 /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