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통한 사유-두 개의 핸드백’


      

                                                                                                                                                                          박춘호

1. 들어가면서 - 전시장의 두 개의 핸드백


전시장에 들어설 때 모든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전시는 들어가서 단 5분을 있다 나오기도 힘들어서 작가에게 민망할 때도 있다. 그러한 작품들은 단지 흥미로울 뿐이지 그 이상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화려하다고 혹은 잘 만들고 그렸다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작품은 화려하지도, 잘 만들지도, 그리고 잘 그리지도 못 하였지만 전시장을 들어서면서 단지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괜히 눈길을 주게 되고, 생각을 해보게 하고, 발걸음을 잡아 붙드는 작품들이 있다. 그야말로 무의식적으로 응시하게 만들고 유혹하는 작품들 말이다. 그것은 물론 관객인 나의 취향의 문제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그것은 작품을 매개로한 ‘작가의 사유의 흔적이 내게 은밀한 유혹의 손길을 보내는 것’이다.


미술은 ‘작품을 매개로한 작가와 관객의 소통’ 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한다. 작가는 자신의 의지가 표현된 작품을 생산해 내며, 관객은 전시장에서 작가가 부재한 상태에서 그러한 작품과 대면하게 된다.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언어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는 작품에 대한 감성적인 접점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어떠한 종류의 의도가 되었건 ‘무엇일까?, 무언가?’, 즉 교감의 공통분모로서 그 ‘무엇’이 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언어적으로 표현이 가능하고, 언어적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은 사고의 과정을 거쳐 교감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언어가 아닌 시각 이미지로서 소통을 한다는 것은 바르트가 말한 것과 같이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특징인 “다양한 층위의 내포” connotations 들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소통의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작품에 의해 소통이 되어야 하는 것은 작품의 ‘주제 subject’인 것이다. 그래서 작품의 명제가 - 물론 관객을 당황하게 하는 ‘무제 untitled’ 혹은 ‘작품 work’등의 제목도 있지만 - 이러한 소통을 위하여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작품의 명제를 정하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서 신중을 요하는 작업일 것이다. 하나의 예로서 잭슨 폴록은 격정적인 그의 뿌리기 그림을 완성하고 언제나 작품제목을 정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작품을 응시하는 데 할애 했다고 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허상과 진실을 작품으로 완성한 작가들이 한곳에 모였다. 국내 대표적인 극사실주의(hyperrealism) 작가 22명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여섯 개 방의 진실’ 전이 사비나 미술관(관장 이명옥)에서 오는 8월30일까지 열린다. … 이명옥 관장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현실 이미지가 범람하는 요즈음 진짜에 대한 열망과 수작업에 대한 관심이 미술에선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조망할 수 있는 전시’라며 ‘우리 화단의 대표 극사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관찰하는 색다른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여름 (2006. 6. 21 ~ 2006. 8. 30)에 안국동에 위치한 사비나 미술관에서 있었던 “여섯 개 방의 진실”전에 대한 신문기사이다. 기사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거의 완벽한 미메시스의 향연을 통하여 관객은 이것은 이것 일 것 같은, 즉 작가의 재주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과거의 재현으로서의 미술을 부담 없이 즐기며 볼 수 있는 전시였다. 그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작가가 무척이나 똑같이 만들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는 작품이었다. 작품의 제목도 “구찌와 귀원”이라는 명품 브랜드와 작가 자신의 이름이 대비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기존의 하이포 리얼리즘작가들이 작품제작 과정에 미국식 즉물주의적 관점이 내재해 있었다면 제목에서 이미 이러한 기존의 개념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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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와 귀원, Acrylic on Fabric, 65x55x17Cm, 2002



2. 사유의 대상으로서 두 개의 핸드백 - 관찰자의 입장에서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그의 작업은 진짜 구찌 핸드백을 보고 작가의 이름을 붙인 귀원이라고 명명된 모조품을 만들었다. 가능한 한 오리지널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려고 최선을 다한 것 같이 보인다. 기존의 하이퍼 리얼리즘 작품들과 단순 비교한다면 완성도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재현의 완벽함이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전시장의 다른 작품들이 기존의 미술사적인 하이포 리얼리즘작업의 해석의 범주 내에서 해석가능하고, 그래서 감히 진부 Cliché 한 작업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일까? 이러한 점이 이 작품을 응시하게 되는 이유였다. 병치되어 있는 두 개의 핸드백을 통하여 작가가 어떠한 생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과연 작품을 감상하는 올바른 감상법일까? 가슴으로 와 닿는 것이 아닌 머리로서 판단을 하고 이해하는 것이 미술을 보는 방법일까? 그러나 나는 관객으로서 내 눈앞에 두 개의 핸드백과 작품의 명제가 주어져 있고 그러한 조건을 가지고 작품의 의미를, 즉 작가의 의도를 찾아나가야 한다.


1) 두 개의 핸드백 - 관찰


먼저 두 개의 핸드백을 바라보며 전통적 미술의 역할, 즉 재현의 기능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서양에서 image가 라틴어 imago에서 유래된 것으로 망자에 대한 기억을 위한 데드 마스크를 의미했다. 그와 더불어 image는 imatari에서 유래하였다고 볼 수 있는 데 그 뜻은 ‘모방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이미지를 생산하는 미술은 근본적으로 재현 represent 과 모방 imitation 이라는 기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재현을 위해서는 원본이 존재하여야 하고 완벽한 모방을 통한 재현물이 존재한다. 잠시 고대 그리스의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전설’과 ‘담징의 전설’ 속에서도 완벽한 모방에 의한 재현이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완벽한 재현을 위한 욕구는 서구 미술에서 다양한 방법과 기계의 고안을 가져왔다. 아마도 이러한 절정은 르네상스의 원근법의 활용과 17세기 네덜란드 세밀화에서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하였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19세기 사진의 발명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귀원의 작업은 하나의 대상을 앞에 두고 재현으로서 그 대상을 옮기는 작업을 했다는 것은 지극히 전통적인 미술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한 가지 재고해 봐야 할 것이 “왜 작가는 재현된 작품만을 전시장에 전시하지 않고 대상과 작품을 동시에 전시장에 병치시켜 놓았나?”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작가는 전시방법과 작품 제목을 통하여 관객에게 무언의 사유를 요구하고 있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좌측에 ‘구찌 핸드백’ 그리고 오른쪽에 작가 스스로 ‘귀원이라 명명한 재현된 핸드백’을 배치하여 글 읽기에 익숙한 관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구찌를 보고 귀원을 보게 된다. 작가는 재현의 대상과 재현된 결과물을 동시에 보여주는 데, 이것은 결과물만 보여주는 경우와 개념상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먼저 결과물만 보여주는 경우는 관객은 이전에 구찌핸드백을 본 경험의 유무에 따라 비록 ‘귀원핸드백’의 마크가 구찌와는 다르더라도 실재 존재하는 구찌핸드백을 재현한 것인지 아닌지를 인식, 판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원본과 재현물을 동시에 보여주므로 관객은 자연스럽게 두 핸드백을 번갈아 비교하며 구석구석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비교 및 관찰을 통하여 관객은 자연스럽게 재현의 미비함을 찾아내게 되며, 아마도 이 지점에서 관객은 작가가 원본을 보고 다른 하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2) 두 개의 핸드백 - 유추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작가는 최대한 원본에 충실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결과물은 원본과 차이가 생겼다. 그리고 관객은 두 개의 핸드백에서 그 차이를 지각한다. 그것을 하나의 은유적 표현으로 바라본다면 원본작품을 하나의 canon으로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canon에 따라 즉 관례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전형으로서의 작품이 존재하지만 새롭게 재현되어진 작품은 어딘가 전형으로서 제시된 작품과는 차이점이 생기게 마련이다.


지난 달 29일 인사동에 있는 관훈 갤러리에서 있었던 그의 개인전 때 그는 이런 유추를 해 볼 수 있는 새로운 단서를 제공하였다. 두 개 층의 전시 중 위층에서 그는 두 개의 핸드백과 같은 작업을 전개하면서 디스플레이에 있어서 이전과 같이 상호 옆에 병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원본은 모두 하얀색으로 말끔히 칠해져있는 전시대 위에 전시를 하고, 재현물은 모두 작업대 위에 혹은 선반위에 전시하였다. 그리고 강의실의자 작업은 원본은 물론 전시대 위에 전시되어 있고, 재현물은 용도상 일반의자와 같이 바닥에 그대로 전시하였다. 또한 원본과 재현물은 이전과 같이 병치되어 전시한 것이 아니라 전시장에 디스플레이 된 동선을 따라 이동하다보면 여기서 봤던 전시대 위의 원본이 얼마 후 낯설게 작업대 위, 바닥 혹은 선반위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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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원 개인전 전시전경, 2006



이러한 디스플레이 방법은 ‘병치의 전략’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동선을 이루며 떨어져 존재한다는 것이 인식은 기억에 의존한다는 것과 같이 짧으나마 시차를 통하여 앞서 봤던 것과 유사한 것이 - 형태와 치수는 똑 같으나 재료, 색상 혹은 물리적 변화로 인한 형태의 변화 - 존재한다는 것은 상호 원본과 복제본의 상호관계 속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의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조셉 코수스, One & Three Chairs, 1965


이러한 작업과 연관을 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조셉 코수스 Kosuth, Joseph 의 작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는 60, 70년대의 개념미술 conceptual art 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대표적인 작업이 아래의 사진과 같이 “한개 그리고 세 개의 의자”와 같은 전시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데, 실제 의자와 그 의자의 재현물로서 원본 의자를 찍은 사진과 그리고 단어 의자의 사전적 의미를 확대하여 동시에 원본의자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코수스의 작업은 유럽 미술의 전통, 즉 플라톤이후 지속되어온 미메시스의 논쟁과 더불어 소쉬르 이후 지속되어온 시그니피앙 Signifiant 와 시그니피에 Signifie 의 관계를 통한 기호학적 성찰이 동시에 스며들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뒤샹 이후의 특정한 작가들의 가치는 미술의 본질에 대하여 얼마만큼 질문하였느냐에 따라 작가적 비중을 둘 수 있다. (The ‘value’ of particular artists after Duchamp can be weighed according to how much they questioned the nature of art.)”라는 그의 진술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그의 작업은 뒤샹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며 “미술의 본질 the nature of art” 에 대한 사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이러한 사유는 화가에 의해 창조된 이미지에 대한 플라톤적 전통을 일차원적이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있으며,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지각이 가능한 물질적 기표 Signifiant 로서의 의자와 문화적, 자의적, 함의적 가치를 내포한 기의 Signifie 로서의 사전적 텍스트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작품을 배치하여 놓은 형식은 중심에 원본의자를 배치하고 좌우에 각각 사진과 사전텍스트를 배치해 놓았다. 이러한 배치의 형식은 유럽 가톨릭 전통의 제단화를 연상시키는 데 가장 유명한 제단화 형식이 세 폭 triptych 으로 배치되어있는 것으로 평상시에는 양 날개를 접어두었다가 미사를 드릴 때만 양 날개를 펼쳐놓는 것으로 가운데 패널에 가장 중요한 이미지를 배치시키고 좌우의 이미지는 중앙의 이미지로 집중하는 형태로 되어있다. 세 개의 패널로 꾸며진 제단화에 있어서 3이라는 숫자를 굳이 의미를 추적하여 본다면 교리상의 삼위일체론과 연결 시켜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도 가운데 의자를 중심으로 좌로는 플라톤적인 모방 그리고 우로는 기표와 기의적 관계로 설정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해석과잉의 문제로 빠져들 수도 있지만 좌우 배치를 “왜 그렇게 했을 까?” 에 대한 추적을 해 본다면 그들의 문화사에서 좌우의 의미를 연관 시켜 생각해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그들의 문화에서 좌는 나쁨 혹은 속됨의 의미로 그리고 우는 좋은 것 혹은 성스러움을 의미하고 있다.


잠시 코수스의 작품을 여기서 거론하는 이유는 그가 말 한 것과 같이 “미술의 본질”에 대한 사유가 작업의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작가 오귀원 에게도 중요한 주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요소가 작가 오귀원의 작업이 서구 모더니즘적 전통의 선상에서 지속되고 있는 “미술의 본질에 대한 사유의 전통” 의 선상에 있는 작가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3) 두 개의 핸드백 - modern, contemporary, avant-garde


어느 순간에서부터 modern과 contemporary는 우리에게 개념상 혼돈스러운 번역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모던은 국어사전에서 근대, 현대라는 두 시간대로 정의되고 있다. 분명 근대는 “얼마 지나가지 않은 가까운 시대”로 사전에 정의하고 있으며 “근고와 현대의 중간지대”로 정의하고 있다. 영어에서 modern은 사전적 의미가 다음과 같다.


1. ADJ : ADJ n

Modern means relating to the present time, for example the present decade or present century.

▶the problem of materialism in modern society.

▶the risks facing every modern marriage.

= contemporary


여기서 영어의 개념상 “modern” 과 이것이 한글로 번역이 되면서 “모던” 이 되었을 때는 개념상의 미묘한 차이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던 개념은 선형적 시간관에 입각하여 현대와는 조금 떨어져있는 과거(?)를 이야기하며 무엇인가 약간은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을 풍기고 있다. 그러나 영어의 의미는 분명하게 contemporary와 같은 의미의 단어라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화제가 되었던 “서울에 댄스홀을 허하라.”라는 책을 기점으로 우리의 현대성 modernity 의 기원에 대한 문화사적인 고찰이 붐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모던 뽀이와 걸” 이라는 표현은 자의식의 부재 속에 유행만을 맹목적으로 쫒는 부류를 비하시키는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모던은 어떤 면으로는 지금의 모던과 다르게 부정적 수식어의 인상은 있지만 영어의 modern과 거의 유사한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현대”라는 단어에 상대적으로 구시대를 표상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미술의 정의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modern 과 contemporary는 어떠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국어에서는 선형적인 시간상의 개념으로 근대와 현대로 구별하고 있다면, 서구의 modern art와 contemporary art의 구별은 단순히 시간상의 문제로 보기 보다는 modernism적 사유를 뿌리로 파생되어 나온 것이 contemporary art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시간적 개념으로만 구별 짖고 있다면 그들은 미술에 대한 입장 혹은 개념상의 차이로 구별 짖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modern 과 contemporary art는 avant-garde 정신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방가르드, 즉 전위적인 정신은 그들의 모던 및 현대미술의 공통된 특징인 것이다.


코수스가 말한 것과 같이 뒤샹이후의 “미술의 본질 the nature of art”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이며 아방가르드 정신은 모더니즘의 핵심으로 미술에 대한 개념주의적 사고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한국현대미술에서는 이러한 “미술의 본질 the nature of art”에 대한 사유자체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현대미술의 태생자체가 자생적이지 못하였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60, 70년대 에 소규모 실험미술이 있었으나 그것은 일회성 이벤트로 사유의 뒷받침이 없었던 관계로 그 맥을 이어나가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국미술계에서 이러한 “미술의 본질 the nature of art”에 대하여 사유하며 작업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삶의 문제를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유는 그러한 작품이 소비될 수 있는 소비시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질에 대한 사유의 부재 속에 가치를 추구한다는 불가능한 것이다. 오귀원의 주제의식도 “미술의 본질 the nature of art”에서 맴돌고 있다.


3. 나가면서 - 조각을 통한 사유 혹은 사유로부터의 조각


20세기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전통은 모더니스트들의 지속적인 전위적 사고를 통한 다양한 미술에 대한 정의에 입각한 새로움의 추구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새로움의 추구가 궁극에는 “새로움의 추구를 위한 새로움”으로 전락하였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러나 아방가르드적인 전복적 사고는 철학과 더불어 인간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아방가르드적 사고는 작가들을 끊임없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모색을 하게 하였으며, 이러한 전위적 작가들로 인하여 미술의 표현영역은 넓어졌다. 왜 뒤샹일까?


철학과 미술은 분명히 다르다. 미술은 로고스 적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파토스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미술가는 절대적으로 사고의 끝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미술은 모더니즘이래로 더욱더 많은 사유를 요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예가 뒤샹인 것이다. 뒤샹이후 특히 60년대 미니멀아트이후 미술과 철학은 한동안 밀월의 관계를 가졌으며 그 결과 당시의 몇몇 작가들은 미술에 대한 상당히 의미 있는 글들을 남기었다. 그들은 사유를 통한 미술을 하였고 미술을 통하여 사유를 검증하고자 하였다. 그들이 백지상태에서 사유를 한 것이 아니라 주목할 만한 것은 이전의 모더니즘, 혹은 그린버그식의 모더니즘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에서 출발한 것이다. 오귀원의 작업은 이러한 아방가르드적인 선상에 놓여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오귀원의 작업을 보면서 조셉 코수스적인 개념미술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먼저 코수스의 작업은 작업의 조형적 전시방법이 이분법적인 대비의 방법으로 플라톤적 맥락과 소쉬르적 기호학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개념이 작업을 지배함으로써 작업의 개념 너머의 그 무엇을 생각해 보게 할 수 있는 요소가 부재한다. 즉 개념의 일차원적 표현이 작업의 전부라고 말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개념미술이 추구하는 목표일지라도 분명 유추를 통한 사유의 즐거움이 반감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코수스의 한계와 비교하면 오귀원의 작업은 이러한 코수스의 “일차원적인 미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 다의적인 질문을 한 작품 속에서 던지고 있다는 것을 그의 작업과정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작가의 작업하는 행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의 전시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원본과 복제본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인데 그 원본을 완벽하게 재현하기위해 최대한 정교하게 그가 가지고 있는 기술들을 총동원하여 복제본을 제작한다. 그러나 그의 기술적 한계로 - 그러나 초기에 비하여 기술적으로 괄목할 만큼 발전하였음 - 원본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크레파스와 파스텔을 가지고 크레파스와 파스텔이 종이위에 닳아 없어질 때까지 칠하기의 단순한 행위를 지속한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일반적인 개념미술작가들의 작업과 달리 육체적 노동을 수반한 전통적 개념의 조각 작업의 전통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그의 작업을 다양한 독해가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며 개념미술의 한계인 “일차원적 작품읽기”의 단순함을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지금의 한국미술을 생각해 보자.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통한 현대미술작품이 서구미술과 전혀 손색이 없이 생산되고 있는 현실이다. 한편으로는 세계 속의 한국미술로 도약하기위해서 한국미술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80년대 정치적 상황과 당시의 비약적인 경제도약으로 “한국적 미술”에 대한 갈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민중미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지 양식 style 적인 추구에만 머물러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의 종식과 90년 포스트모더니즘논쟁으로 “민중미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많던 당시의 민중 작가 및 이론가들 중 상당수가 전향(?)을 하였거나 미술계에서 사라진 상태이다. 90년대 미술계는 문화상대주의, 다문화주의로 대변되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고의 도입으로 일순간에 파편화되어가는 양상을 보였으며 그러한 상황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술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전적으로 서구의 담론을 들여와 여과 없이 읽고 적용해 왔다. 대부분의 작가 또한 이러한 미술의 본질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외면하다시피 하였다. 한마디로 아방가르드적인 정신이 한국미술에서 과연 존재하고 있는 가하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물론 과거 AG그룹부터 시작하여 80년대 소그룹운동등도 있기는 하였지만 엄밀하게 그들이 자생적인 아방가르드정신에 입각한 순수한 운동이었을까 생각을 해보면 그렇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담론적 확대 재생산이 되지 못하고 요즘 정치판과 같이 작가들이 이합집산하고 변신을 자행하는 행태를 통해 시대착오적인 바람일지는 모르지만 “작가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데 그것은 바로 맥락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올림픽이후 미술계의 호황은 담론적 재생산에 특별히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이 시장구조에 맞는 생산, 소비체제로 제도화 되었다. 특히 IMF전후로 미술시장의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불황속에도 더욱 시장의 지배는 곤고해졌다. 그러므로 아방가르드적 관점에서 “미술의 본질”에 대하여 고민한다는 것은 이 땅에서 거의 주목받을 수 없고 관심이 없는 부분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귀원의 작업은 한국미술계의 비주류적인 상황에 처해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개인적으로 한국미술의 맥락화를 위한 하나의 지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오귀원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까지 한국미술의 특징 중 하나가 서구미술이 이 땅에 들어오면 개념적인 것도 감성적인 것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서구의 미니멀리즘이 감상적으로 절재 된 - 이우환의 영향이 크지만 - 표현주의로 변이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민족적 감수성의 특징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으나, 담론적 맥락화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바라는 것은 제 2의, 제 3의 오귀원과 같은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나와 주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미술의 본질”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이 다양하게 이루어지며, 거창한 비엔날레는 아니라도 인사동의 조그만 전시장에서 볼품없더라도 스스로 기획하고 전시하여 선술집에서 뒤풀이하며 논쟁을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담론을 확대재생산하며 다른 나라의 담론들과 지속적인 비교분석을 할 때 진정으로 그렇게 염원하는 세계 속 한국미술의 위상을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의 그의 작업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가 될 지 계속 지켜봐야 되겠지만 앞으로 더욱 사유의 진전이 있어 좋은 작업을 기대해 본다.


참고서적


● 레지스 드브레, 시각과 언어, 『이미지의 삶과 죽음』

● 마르틴 졸리, 이선형 옮김, 동문선, 『이미지와 기호

● 롤랑 바르트 저, 김인식 편역, 현대미학사, 1993, 『이미지와 글쓰기』 중 『이미지의 수사학』

● “Collins COBUILD Advanced Learner's English Dictionary” 4th edition published in 2003